삐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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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5. 16. 10:37
작성자
삐아또

 

 

본인이 신청했던 「白薔薇学園殺人事件」 skeb 소설을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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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장미 학원의 점심시간.
 여느 때처럼 홍차를 우리기 위한 이들로 유리코의 앞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고 5분 정도 지나자 란코가 교실에 들어온다. 책상에 놓인 찻잔 세트를 께느른하게 바라보던 유리코가 고개를 든다.
"란코"
 엷은 미소와 함께 란코를 부른다. 란코는 유리코의 책상을 시작점으로 늘어선 대기 줄을 보고 눈을 가늘게 뜬다.
"……내가 아니라, 옆에 있는 놈들한테 시켜주라고. 정말이지."
 직접 우릴 수는 없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기 귀찮은 것인가. '광견'이라고 불리던 자신이 '홍차를 우린다'라는 형편에 맞지 않는 짓이 여간 하기 싫었다. 게다가, 결국엔 란코가 홍차를 우리니 대기자들에게 헛된 기대를 안겨주는 듯해 그들이 불쌍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란코의 그런 마음도, 팬들의 기대도 유리코의 한마디로 일축된다.
"네가 우려주는 홍차가 좋아."
 팬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그래도 되는 거냐고. 란코의 어깨가 축 처진다.
"……하아."
 어쩔 수 없지. 란코가 티캐디에 손을 뻗는다. 유리코가 좋아해서 자주 사용하는 찻잎은 스틸 통에 보관하고 있다. 퐁,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뚜껑을 열지만, 눈에 익은 마른 잎들이 보이지 않는다. 유리코와 란코는 통 속을 내려다본다.
"흠, 홍차가 떨어졌네……."
"이 학원의 홍차 소비량은 일본에서 일등이니까……."
 백장미 학원에는 유리코와 란코뿐만이 아니라 '양'이라 불리는 언니동생 한명씩, 혹은 언니 한 명에 동생이 여러 명인 관계가 존재한다. 그들을 중심으로 장미에 둘러싸여 차를 마시는 행위가 이곳 여기저기에서 일어난다. 평범한 서민 대표인 란코에겐 이해할 수 없는 세계지만, 여기선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싫은 소릴 한다고 찻잎이 돋아나진 않는다. 란코는 한숨을 쉰다.
"하아. 사러 갈까."
 지금 출발해서, 물건을 사고 돌아오는 것을 계산하면 15분 정도는 걸리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병을 내려놓은 란코가 걷기 시작할 때였다.
"란코, 같이 가자."
 유리코가 일어섰다.
"하!? 굳이 둘이서 안 가도 되잖아."
"평소엔 네게 부탁했었으니까, 가끔은 스스로 움직여야지."
 다음 말을 꺼내기 위해 입을 벙긋거리면 유리코가 한발 앞선다. 에스코트하듯 란코의 손을 잡고 긴 머리카락을 휘날린다. 핑크빛 효과가 내려앉는 광경에 순간 환각인가 싶었지만, 비명이 들리는 걸 보니 주위 상황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자, 가자. 매점에서 팔지?"
 학원의 여자를 모두 헤롱헤롱대게 만드는 부드럽고 설레는 아우라. 그것을 무산시키듯이 란코가 유리코의 손을 잡는다.
"네, 네. 가자고!!"
 유리코를 따라 란코도 걸음을 옮겼다.

 백장미 학원의 매점. 그곳은 일반 매점의 세 배쯤 되는 규모를 자랑한다. 식당 옆에 존재하며, 기본적으로 일류 상품들이 모여있다. 기숙사 제도 때문인지 식료품을 제외하고도 오락거리, 식기, 잠옷, 선물용 꽃, 뒤에 가선 악기까지 파는 것 같다.
"흠……. 매점에 올 기회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낯선 것들이 많네. 모르는 상품뿐이야."
"보통 이것보다 더 좋은 물건을 산다는 소리? 아가씨는 역시 다르네……."
 란코가 신세를 지고 있는 집은, 솔직히 가난했다. 힐끔 눈에 들어오는 꿀이 10,000엔을 넘어 놀라기도 하고, 5년 치의 세뱃돈보다 더 높은 가격의 접시가 있어서 경악하기도 하고. 란코는 매점에만 있으면 좌불안석이었다. 반면, 이런 것이 익숙한지 유리코는 란코의 세뱃돈 10년 치 짜리 찻잔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누구나 그 모습을 보면 서민의 마음이 대거리하듯 이글이글 타오르기 마련이다. 유일하게 진정할 수 있는 코너로 걸어가 진열대에 놓인 상품을 손에 들었다.
"그럼, 이건 어떠냐!? 내가 좋아하는 타코야끼 맛 과자. 이런 서민적인 음식, 먹어본 적 없겠지."
 반짝반짝 은색으로 빛나는 포장지. 어디를 봐도 저렴한 과자의 가격표에는, 70엔이라고 적혀있다. 유리코는 구미가 당기는지 포장지에 자기 얼굴이 반사되는 것을 구경한다.
"흠. 없어……. 어디서 파는 거지?"
"……편의점도 그다지 들어가 본 적 없는 것 같네, 유리언니."
 유리코가 모르는 지식을 알려주는 기분이 들어 신난다. 란코는 옆에 있던 상품도 집어 든다.
"그럼 이건!? 탄탄, 여기 기름이랑 파 추가요 컵라면"
 마패처럼 움켜쥐고 유리코에게 들이민 물건은 컵라면이다. 유리코는 눈썹에 힘을 주며 난제에 직면했을 때와 같은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흐음……. 대단한 이름의 음식이야. 맛을 상상하지 못하겠어."
"그렇다니까"
"탄탄…… 이라면, 미용 효과가 있는 건가? 기름과 파를 누구한테 요구하고 있지? 기름을 더하면 뭐가 달라질까."
 여기 있는 것보다 훨씬 좋은 음식들을 먹고 지내는 유리코는, 설마하니 돼지기름을 추가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할 터이다. 답을 나밖에 모르는 문제를 내는 기분으로 란코가 웃었다.
"그런데 왜 란코가 좋아할 만한 물건을 팔고 있지?"
"……내가 요청했어. 그랬더니 신기한 맛이라고 의외로 팔린대."
"그렇구나. 네가 자주 먹는 맛이라면, 사보자."
 유리코가 컵라면을 하나 잡는다. 주변에 놓인 타코야끼 맛 과자와 막대 사탕, 대용량 초콜릿, 마른오징어 등을 차례로 손에 쥔다. 절대로 유리코의 입맛은 아닐 거라고 판단한 란코는 그를 말리기로 한다.
"과, 관두는 게 좋지 않겠어?"
"무슨 소리. 일반적인 감각을 배울 좋은 기회야. 거기다……"
 유리코는 란코에게 미소를 건넨다. 교실에서 본 핑크빛 안개도, 꽃도, 반짝임도 없다. 다만, 잔잔한 웃음이 자연스럽게 얼굴에 떠오른다.
"네가 좋아하는 맛을 알고 싶어."
"……그러냐."
쑥스러운지 란코가 눈을 돌린다. 즐겨 마시던 찻잎까지 챙겨 든 유리코가 기분 좋은 듯이 계산대로 이동한다.

 쇼핑백이 바스락거린다. 흔히 비닐봉지라고 불리는 물건은 백장미 학원에서 허용되지 않는 듯싶다. 표면에 장미가 인쇄된, 손잡이가 쓸데없이 비단처럼 고운 가방에 총 500엔도 안 되는 불량식품이 들어 있다. 점심시간은 15분 남짓 남았다. 예상보다 쇼핑을 즐긴 것 같다. 란코는 시계를 노려본다. 앞으로 5분 정도 안에 교실에 가서 속공으로 홍차를 우린 뒤 자신의 교실로 돌아가 다음 수업에서 쓸 교과서를 찾아야 한다. 유리코는 시계 침을 쳐다보는 란코의 어깨를 두드리고 그의 손에 있는 쇼핑백의 손잡이를 잡았다.
"유리언니?"
짐을 빼앗기며 자연히 유리코에게 시선이 돌아간다.
"란코, 고마워."
"뭐가 고마운데."
"어울려줘서. 너와 함께 가서 즐거웠어."
 그럼 이만. 유리코는 란코에게서 몸을 돌린다. 아무래도 홀린 것 같다. 란코는 그 등을 눈으로 좇는다.
"……."
 네가 좋아하는 맛을 알고 싶어. 너와 함께 가서 즐거웠어. 유리코가 뱉은 말은 모두 진심임을 아는 것이, 그리고 그 사실을 자신이 깨닫는 것이 성가셨다. 차라리 거짓말이나 체면치레였다면 좋을 텐데. 어쩌면 좋을지 모르는 복잡한 기분 따위 들지 않아도 될 텐데.
딩─동─댕─동
 "이런!"
 감상에 젖으려 해도 백장미 학원의 일상은 멈추지 않는다. 다음 수업을 알리는 타종 소리를 듣고 서둘러 다리를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