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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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 4. 20. 13:29
작성자
삐아또

 

 

본인이 신청했던 「白薔薇学園殺人事件」 skeb 소설을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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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원 병동의 희고 깨끗한 길을 걷는다. 손에 쥐어진 레몬색 꽃이 그의 가지런한 보폭에 맞춰 흔들리고 있다. 목적지에 도착한 유리코는 조용히 문을 연다. 침대에 누워 있던 방의 주인이 창가를 향한 시선을 이쪽으로 옮기자, 머리카락 사이 길쭉한 모양의 빨간색이 빛나는 것이 보였다.

"컨디션은 좀 어때. 아픈 곳은 없니?"

 그러면서 침대 옆에 놓인 의자를 끌어와 앉는다. 환자복을 입은 란코는 링거 호스를 옆으로 치우고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유리코를 마주 보았다. 들고 있던 꽃을 내밀자 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그것을 받는다.

"유리언니…… 꽃을 매일 가져올 필요는 없잖아. 이제 꾸밀 데가 없다고."

 란코가 입원한 개인실에는 색색의 꽃들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 오늘 들어온 신입을 둘 만한 곳이 없는지 살펴보지만, 선반 위까지 꽃병이 자리한 마당에 빈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모두 유리코가 그에게 바친 것이었다. 

"너무 그러지 마. 여기로 오는 길목에 꽃집이 있어서, 지나갈 때마다 너를 생각하면……"

 그때 일을 떠올렸는지 유리코가 웃음을 흘린다.

"나도 모르게 손이 가거든. 폐가 된다면 물론 그만둘게."

 꽃은 란코의 머리 색깔과 똑같다. 가게 앞에 늘어선 꽃이 한가롭게 눈을 마주칠 때마다 유리코는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무심코 손을 뻗고 만다.

"……."

 그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하다. 다시는 사오지 마, 보기 싫어 등 거절이 돌아올 것을 각오하고 기다리자면, 란코는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말한다.

"별로, 민폐는 아니야."

 그대로 입을 벌리다가, 도로 다문다. 아무래도, 그럴싸한 변명을 생각하는 것 같다. 다시 반복한다. 이번엔 제대로 말이 튀어나왔다.

"단지, 매번 꽃을 사면 돈이 많이 들잖아!? 그러니까, 나처럼 꽃을 못 즐기는 놈한테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야."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너는, 이런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단다. 란코."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란코는 손에 든, 무해하게 핀 꽃을 바라본다. 이 무고한 귀여움을 못 본 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어지는 한숨.

"……그럼 적어도 삼 일에 한 번 정도로 해, 유리언니."

"후후, 그래. 그렇게 하자."

 하도 질색하는 얼굴로 말하자 유리코도 표정이 풀어진다. 병실이 마치 꽃집 같네, 라고 농담을 던지면 원망스러운 듯이 이쪽을 바라본다. 

 이것이 며칠 전의 기억이다. 그 뒤로도 유리코는 매일 란코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은 란코가 말했던 삼 일에 한 번인 날이다. 전철에서 내리고, 개찰구를 빠져나와 병원으로 향한다. 지금까지라면 쵸죠 소속의 운전기사가 차로 데려다 줄만큼 먼 거리였지만,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직접 걸었다.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그의 곁으로 가고 싶었다. 접수를 마치고 기억에 있는 길을 따라 병실의 문을 연다. 여느 때처럼 레몬색의 머리카락이 흔들리기를 기다렸지만, 방 안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란코. ……란코?"

 말을 걸며 침대로 다가가 보니 란코가 베개에 머리를 맡긴 채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피. 빨간색부터 기억이 시작된 다음, 쓰러진 란코가 나온다. 그가 점점 커지는 까닭은 자신이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 란코가 총에 맞은 순간, 정신없이 끌어안은 몸의 감촉, 녹슨 냄새. 그것들을 다시 체험하는 기분이다.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회상 도중, 목이 공명하는 소리를 듣는다. 저도 모르게 목을 짚자 차가워진 손끝이 피부에 닿았다. 진정시키듯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동시에 한 걸음 움직인다. 발을 내디디는 중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꽃, 꽃, 꽃이다. 잠든 란코와 장식된 꽃들. 무의식적으로 유리코는 장례식을 연상한다. 란코를 바라본다. 란코의 가슴이 오르내린다. 그가 호흡 중인 증거를 발견하자 갑자기 뛰기 시작했나 싶을 정도로 거친 자신의 심장 소리가 두개를 울렸다.

"……."

 환자복 사이로 보이는 붕대. 그 아래 있는 것이 얼마 전 자기 아비로부터 새겨진 총상임을 유리코는 알고 있다. 그것이 생긴 원인은 자신을 감싸기 위해서였다는 것도.

 쵸죠가, 란코에게 상처를 주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유리코는 정의를 이루고 싶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유리코의 정의는 란코라는 존재가 있어야만 완성된다고, 이해했다. 동시에 유리코는 '란코'라는 존재를 잃고 싶지 않다. 상처받지 않길 바랐다. 가능하다면 그를 아무런 불행도 없는 곳에 가둬서 행복만 느끼게 하고 싶었다. 이성과 감정처럼 모순된 마음이 존재했다. 정의를 관철하다 보면 이런 일은 언제고 벌어질 수 있다. 그것은 이 이상으로 란코가 다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상처 입고, 상처 입은 앞에 기다리는 것은.

 제 정의의 완성── 행복과 란코를 저울질한다면.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뻔하고, 이제 와 볼 필요도 없다.

"……란코."

 곤히 자는 그의 뺨을, 이별을 아쉬워하며 살며시 쓰다듬었다.